피크엔드 법칙: 회사 생활은 가장 강했던 순간과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된다
2026-10-30
목차
연말 평가 면담에서 팀장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꺼낸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3월에 배포 실수로 결제가 40분 동안 멈춘 일과 지난달 마친 신규 기능 출시입니다. 그 사이 일곱 달 동안 맡은 일은 면담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팀장이 일부러 중간을 뺐다기보다 기억이 그렇게 남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은 지난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가장 강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이 전체에 대한 평가를 크게 좌우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이라고 부릅니다. 경험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는 나중에 내리는 평가에 생각보다 영향을 적게 줍니다.
찬물에 60초 담근 손과 90초 담근 손
이 법칙을 널리 알린 사람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입니다. 1993년 카너먼과 동료들은 참가자에게 한 번은 한쪽 손을 섭씨 14도의 찬물에 60초 동안 담그게 했습니다. 다른 한 번은 반대쪽 손을 같은 14도 물에 60초 담근 뒤 30초를 더 담그게 했습니다. 이 30초 동안에는 물 온도를 15도까지 조금씩 올렸습니다. 15도 물도 여전히 차갑고 아픕니다. 두 번째 경험은 첫 번째 경험에 고통을 30초 더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와서 둘 중 하나를 한 번 더 한다면 무엇을 고르겠느냐고 묻자 32명 중 22명(69%)이 90초짜리를 골랐습니다. 고통이 더 길었는데도 끝이 조금 덜 아팠던 쪽을 덜 나쁜 경험으로 기억한 것입니다.
대장 내시경의 기억은 가장 아팠던 순간과 마지막 3분이 정했다
병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1996년 도널드 레델마이어와 카너먼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환자 154명에게 검사 중 1분마다 지금 얼마나 아픈지를 점수로 말하게 했습니다. 검사 시간은 환자에 따라 4분에서 69분까지 달랐습니다. 검사가 끝난 뒤 환자들이 매긴 전체 평가는 검사 시간과 거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대신 가장 아팠던 순간의 통증과 마지막 3분의 통증이 전체 평가와 관계가 깊었습니다. 2003년에는 레델마이어와 카너먼이 동료와 함께 이 결과를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환자 682명을 무작위로 나눠 절반은 검사가 끝난 뒤에도 내시경을 바로 빼지 않고 끝을 움직이지 않은 채 최대 3분 동안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 환자들은 검사 시간이 길어졌지만 마지막 순간의 통증은 덜했고, 검사 전체도 덜 불쾌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후 재검사를 받으러 온 비율은 53% 대 48%로 뚜렷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예전 검사 이력 같은 조건을 보정했을 때만 다시 올 가능성이 조금 높게 나왔습니다. 검사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바뀌었지만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오는 비율의 차이는 작았습니다. 카너먼은 뒤에 쓴 책 『생각에 관한 생각』(2011)에서 이런 결과를 두 자아로 설명했습니다. 두 자아는 순간순간을 겪는 경험하는 자아와 지난 일을 평가하는 기억하는 자아입니다. 그는 사람이 경험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기억을 보고 다음 선택을 한다고 봤습니다.
기억은 정점과 끝만 담지 않는다
피크엔드 법칙을 모든 기억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2022년 알라이벡과 동료들은 이 주제를 다룬 연구에서 효과 크기 174개를 모아 분석했습니다. 가장 강한 순간(정점)과 마지막 순간(끝)이 전체 평가와 관계가 깊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습니다. 경험의 길이는 평가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경험 전체의 평균도 정점이나 끝만큼 평가와 관계가 깊었습니다. 첫 순간이나 경험이 점점 나아졌는지 같은 흐름은 그보다 영향이 약했습니다. 휴가처럼 긴 경험에서는 이 법칙이 잘 맞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2008년 뉴질랜드 연구진은 대학생 49명에게 평균 7일의 휴가 동안 매일 그날의 행복감을 문자로 보내게 하고 휴가가 끝난 뒤 휴가 전체를 평가하게 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정점과 끝이 휴가 전체의 기억을 특별히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생활에 이 법칙을 적용할 때는 정점과 끝이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만 평소에 일한 모습도 함께 반영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장애 뒤의 마무리가 기억을 바꾼다
동료와 팀장이 가장 강하게 기억하는 순간이 늘 좋은 일은 아닙니다. 서비스 장애, 큰 실수, 고객 항의처럼 나쁜 일이 정점이 되기도 합니다.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시경 실험에서처럼 가장 아팠던 순간이 같아도 끝이 다르면 그 일에 대한 기억이 달라집니다. 장애나 실수가 있었다면 수습에서 끝내지 말고 그 일의 마무리까지 직접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원인과 조치 내용을 정리해 팀에 공유하고 몇 주 뒤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았다는 결과까지 알립니다. 그러면 팀장이 그 일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결제가 멈춘 날이 아니라 그 뒤로 같은 장애가 없었다는 보고가 됩니다. 자기평가에도 재발이 없었다는 결과까지 적습니다.
피크엔드 법칙대로라면 연말 몇 주는 평가하는 사람의 기억에 마지막 장면으로 남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연말에만 몰아서 일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앞의 2022년 분석 결과대로라면 평소에 일한 모습도 평가에 반영됩니다. 1년 동안 한 일이 정점과 연말만으로 평가받지 않으려면 자기평가에 그 사이의 일까지 빠짐없이 적으면 됩니다. 자기평가를 쓰는 방법은 자기평가 작성법 글에 있습니다.
평판 조회에서 먼저 떠오르는 일
이직할 때 거치는 평판 조회에서도 이 경향을 생각해 볼 만합니다. 경력직 채용에서는 최종 합격 전에 예전 상사나 동료에게 지원자에 대해 묻는 평판 조회(레퍼런스 체크)를 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기업 채용 분석에서 공고를 살펴보면 토스 계열사와 데이원컴퍼니는 면접 다음 전형으로 레퍼런스 체크를 적었습니다(2026년 10월 분석 기준). 오늘의집과 당근은 마지막 인터뷰인 조직문화·컬처핏 인터뷰와 같은 단계에 레퍼런스 체크를 묶었습니다. CJ올리브영은 2차 면접 합격자에게 처우 협의와 함께 평판 조회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채용 절차가 중단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GC녹십자와 GC녹십자MS는 1차 면접과 2차 면접 사이에 평판 조회를 한다고 공고에 적었습니다. 이 경우 회사는 마지막 면접 전에 예전 동료의 이야기를 먼저 듣게 됩니다. 넥슨 공고처럼 후보자의 동의를 받아 면접 중이나 면접 뒤에 진행할 수 있다고 적은 공고도 있습니다. 피크엔드 법칙이 평판 조회에도 통한다면 평판 조회에 답하는 사람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함께 겪은 가장 큰 일과 마지막 몇 달의 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 추천인은 가장 큰 일을 함께 겪은 사람으로 고릅니다. 같은 팀에 오래 있었던 사람보다 내가 맡은 일이 가장 잘 드러난 프로젝트를 옆에서 본 사람이 더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부탁할 때는 어느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함께했는지 한두 줄로 알려 드리면 답하는 사람이 함께한 일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 퇴사 전 마지막 몇 달을 흐지부지 보내지 않습니다. 이직을 결정하면 마음이 먼저 떠나기 쉽지만 남은 동료에게는 그 몇 달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인수인계 문서는 받는 사람이 혼자 일을 이어 갈 수 있을 만큼 씁니다. 맡던 일의 진행 상황과 남은 문제도 정리해 넘기는 것이 좋습니다.
내 회사 생활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피크엔드 법칙은 남이 나를 기억하는 방식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난 회사 생활을 평가할 때도 비슷하게 작동합니다. 이직을 고민하다가 이 회사에서 3년 동안 실력이 하나도 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판단이 어디서 왔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프로젝트와 최근 몇 달의 분위기가 3년 전체의 평가를 대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마지막이 좋았던 회사는 실제보다 좋은 곳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이력서를 쓸 때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최근 프로젝트와 가장 큰 프로젝트는 금방 떠오르는데 그 사이에 한 일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경력 항목 하나에 두세 줄밖에 적지 못했다면 그 기간에 한 일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해 볼 만합니다. 나중에 지난 일을 평가하는 쪽은 기억하는 자아입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겪은 일은 적어 두지 않으면 평가할 때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그 달에 맡은 일과 결과를 몇 줄씩 기록해 두면 이직을 고민할 때나 이력서를 쓸 때 가장 강했던 일이나 최근 일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 기간을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GridResume 커리어 기록에 이렇게 적어 두면 분기마다 한 일을 모아 볼 수 있습니다. 기록하는 방법은 기록의 중요성 글에 있습니다.
정리하면
사람은 경험을 떠올릴 때 가장 강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 큰 무게를 둡니다. 경험이 이어진 길이는 거의 따지지 않습니다. 다만 평소의 모습도 평가에 함께 반영되고, 휴가처럼 긴 경험에서는 덜 맞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나쁜 일이 정점이 됐다면 재발을 막은 결과까지 직접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퇴사 전 몇 달은 남은 동료가 마지막으로 보는 내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내 커리어를 평가할 때는 기억보다 기록을 보고 판단하는 편이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