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법칙: 유능하던 사람은 어쩌다 무능한 상사가 되는가
2026-07-02
회사를 다니다 보면 실무자일 때는 팀에서 제일 믿음직하던 사람이 팀장이 되고 나서는 영 예전 같지 않은 경우를 종종 봅니다. 본인도 힘들어하고 팀원들도 답답해합니다. 실력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닐 텐데 자리가 바뀌자 어딘가 어긋나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현상에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이라는 이름이죠.
사람은 무능해지는 자리까지 승진한다
1969년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는 여러 조직을 관찰하다 한 가지 규칙을 발견했습니다. 조직에서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무능해지는 자리까지 승진한다는 것입니다. 논리는 단순합니다. 회사는 지금 맡은 일을 잘하는 사람을 승진시킵니다. 그 사람이 새 자리에서도 잘하면 또 승진시킵니다. 이 과정은 그 사람이 더는 잘하지 못하는 자리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는 성과가 안 나오니 더 승진하지 못하고 눌러앉습니다. 결국 모두가 자기가 잘 못하는 자리에서 멈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피터는 이걸 좀 더 냉정하게 정리했습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조직의 거의 모든 자리는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회사가 아예 멈추지 않는 이유는 아직 자기 한계 자리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 그러니까 지금 맡은 일을 아직은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 업무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하던 일과 새로 맡는 일은 다르다
핵심은 자리가 바뀌면 필요한 능력도 바뀐다는 데 있습니다. 뛰어난 개발자를 만드는 능력과 개발팀을 이끄는 능력은 겹치는 부분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코드를 잘 짜는 일과 사람들의 일정을 조율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방향을 정하는 일은 종류가 다릅니다. 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실적을 내는 능력과 팀원 열 명이 실적을 내게 만드는 능력은 별개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대개 앞의 능력을 보고 사람을 올리면서 뒤의 능력을 기대합니다. 승진을 잘한 일에 대한 상으로 주다 보니 정작 새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는 덜 따지게 됩니다. 그래서 일을 제일 잘하던 사람이 관리자가 되어 헤매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그가 게을러졌다기보다는, 회사가 그를 원래 잘하던 일에서 떼어내 낯선 일로 옮겨놓은 것에 가깝습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데이터로도 나타난다
오랫동안 피터의 법칙은 재치 있는 풍자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2018년 경제학자들이 이걸 실제 데이터로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은 미국 여러 기업의 영업사원 수만 명의 승진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법칙 그대로였습니다. 영업 실적이 좋을수록 관리자로 승진할 확률이 높았지만, 그렇게 승진한 사람이 이끄는 팀의 실적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판매를 잘하는 것과 판매하는 팀을 잘 이끄는 것은 별개였는데, 회사는 전자를 보고 후자를 맡긴 셈입니다. 가장 뛰어난 실무자를 승진시키는 익숙한 관행이 조직 전체로 보면 손해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능한 실무자 한 명을 잃고 평범한 관리자 한 명을 얻는 거래가 되곤 하니까요.
조직은 어떻게 피해갈 수 있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몇 가지가 알려져 있습니다.
- 승진의 기준을 바꾸는 것. 지금 자리에서의 성과가 아니라 다음 자리에서 필요한 능력을 보고 사람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관리자를 앉힐 거면 관리 역량을 봐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의외로 잘 안 지켜지는 원칙입니다.
- 승진 없이 보상하는 길을 여는 것. 일 잘하는 실무자에게 관리자 자리 말고도 올라갈 사다리를 따로 만들어 주는 방식입니다. IT 회사에서 흔한 개발자 트랙과 관리자 트랙의 분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실무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이 연봉과 인정을 위해 억지로 관리자가 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 자리에 앉히기 전에 미리 겪게 하는 것. 정식 승진 전에 그 역할을 임시로 맡겨 보거나 일부 책임을 먼저 나눠 주어, 실제로 맞는 자리인지 양쪽이 확인할 기회를 주는 방식입니다.
무능한 상사 밑에서 일한다면
지금 그런 상사 밑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매일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그래도 몇 가지 생각해볼 지점이 있습니다. 먼저 상사가 자리에 잘 안 맞는다고 해서 대놓고 무시하거나 힘겨루기로 가는 건 대체로 손해입니다. 그 사람도 낯선 일에 떠밀려 온 처지일 수 있고 인사와 평가의 권한은 어차피 그 쪽에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각을 세우면 정작 내 평판만 상하기 쉽습니다. 대신 상사가 약한 부분을 조용히 메워주는 편이 낫습니다. 방향을 잘 못 잡는 상사라면 "이렇게 하시죠"라고 결론을 던지기보다 선택지 두세 개를 장단점과 함께 정리해 고르기 쉽게 가져가는 식입니다. 상사 대신 결정을 내려버리는 게 아니라 결정을 쉽게 만들어 주는 쪽이라 반발도 적고 일도 실제로 굴러갑니다. 지시가 애매할 때는 넘겨짚지 말고 한 번 더 확인하고, 중요한 합의는 기록으로 남겨두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자리에 서툰 상사일수록 말이 자주 바뀌는데 남겨둔 기록이 나중에 나를 지켜줍니다. 내가 한 일이 상사의 미숙함에 묻혀 사라지지 않게 챙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과를 그 때 그 때 적어두면 평가 시즌이나 다음 이직 때 흐려지지 않은 근거로 쓸 수 있습니다. 상사가 내 공을 잘 대변해주지 못하는 상황일수록 스스로 남긴 기록의 값어치가 올라갑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더 배울 것이 없고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면, 팀을 옮기거나 회사를 옮기는 것 역시 도피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무능한 상사 밑에서 오래 버티는 일 그 자체가 미덕은 아닙니다.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개인 입장에서도 새겨둘 만한 게 있습니다. 승진이 늘 정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승진을 성공과 같은 말로 여기지만, 지금 하는 일에서 보람과 성과를 느끼고 있다면 그걸 잘 못하는 자리로 올라가는 게 반드시 좋은 선택인지는 한 번 따져볼 만합니다. 관리가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무를 깊이 파고들 때 가장 빛나는 사람도 있고, 두 길에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승진 제안을 받으면 연봉과 직함만 보지 말고 그 자리에서 실제로 하게 될 일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인지 먼저 떠올려보는 게 좋습니다. 남들이 다 오르는 사다리라고 해서 그 끝이 내 자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피터의 법칙이 승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새 자리에는 새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관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실무를 잘했다는 사실에 기대는 대신 사람을 이끄는 일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합니다. 자리가 바뀌면 잘한다는 것의 기준도 바뀐다는 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무능해지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그 자리마저 자기 것으로 만들 여지가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승진 여부 자체가 아니라 옮겨간 자리가 요구하는 일을 기꺼이 다시 익히려는 태도입니다. 남을 볼 때도 한 가지는 기억해둘 만합니다. 지금 서툰 상사가 원래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새 자리에 적응하는 중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터의 법칙이 씁쓸한 구석을 담고 있긴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새 자리가 요구하는 것을 새로 배울 줄 아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