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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의 법칙: 마감이 2주면 일도 2주짜리가 된다

2026-08-06

보고서 하나에 마감을 2주 주면 그 보고서는 2주가 걸리는데 보고서를 이틀 안에 내야 하는 상황이면 이틀 만에 나옵니다. 품질이 크게 다르냐 하면 대개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의 크기가 시간을 정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이 일의 크기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입니다. 일은 그것을 끝내는 데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울 때까지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해군은 반으로 줄었는데 해군성은 커졌다

1955년 영국의 역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은 이코노미스트에 짧은 에세이 한 편을 실었습니다. 그가 들여다본 건 영국 해군의 인사 통계였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1914년부터 1928년 사이 영국 해군의 주력함은 62척에서 20척으로 줄었습니다. 장병 수도 14만 6천 명에서 1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관리할 대상이 3분의 1로 줄었으니 관리하는 조직도 줄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해군성의 행정 인력은 2천 명에서 3천 5백 명으로 늘었습니다. 배가 줄어드는 동안 서류는 늘어난 것입니다. 파킨슨은 여기서 일의 양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수 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끌어냈습니다. 풍자로 시작한 이 관찰은 1958년 같은 이름의 책으로 묶이면서 조직론의 고전이 됐습니다.

왜 일은 시간을 채우는가

개인 차원의 원인부터 보겠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일이 부풀어 오릅니다. 이틀이면 끝날 조사가 2주짜리 마감 앞에서는 참고 자료를 하나 더 찾고 다 쓴 문서를 또 고치는 일로 자랍니다.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마감이 멀면 지금 끝낼 이유가 없어지고, 끝낼 이유가 없는 일은 계속 자라기 때문입니다. 파킨슨은 같은 책에서 이 부풀어 오름이 방향을 어떻게 잡는지도 지적했습니다. 위원회가 원자력 발전소 예산은 10분 만에 통과시키면서 자전거 보관소 지붕 색깔은 한 시간 넘게 토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문제는 아는 사람이 적어 말이 없고, 쉬운 문제는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어 시간이 늘어납니다. 남는 시간은 이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 만만한 일로 흘러갑니다. 조직 차원의 원인은 더 구조적입니다. 파킨슨의 관찰에 따르면 일이 많아진 관리자는 경쟁자가 될 동료가 아니라 부하를 늘리는 쪽을 택합니다. 부하가 둘 생기면 그때부터는 지시하고 보고받는 일이 새로 생깁니다. 처음에 있던 일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늘어난 만큼 서로를 위한 일이 만들어집니다. 해군성 관료가 배와 무관하게 늘어난 이유입니다. 일이 늘어서 사람이 느는 게 아니라 사람이 늘어서 일이 늡니다.

내 하루에서는 이렇게 나타난다

이 법칙은 조직 풍자로 유명해졌지만 정작 매일 얻어맞는 건 개인의 하루입니다. 1시간으로 잡은 회의는 30분 만에 결론이 나도 1시간을 채웁니다. 금요일 마감인 자료는 수요일에 사실상 끝나 있어도 금요일까지 손에 붙잡혀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날은 이상하게 일도 끝나지 않습니다. 하루를 꽉 채워 바빴는데 저녁에 돌아보면 오늘 뭘 끝냈는지 말하기 어려운 날이 반복된다면, 실력이나 성실함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배정하는 방식의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연차가 쌓이는 것과 경력이 쌓이는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예전 글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파킨슨의 법칙은 그 간극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 중 하나입니다. 시간을 채우기만 한 일은 바쁨 말고는 남기는 게 없습니다. 결과는 끝을 정해놓고 닫은 일에서만 나옵니다.

시간에 일을 맡기지 말고 일에 시간을 배정할 것

대처의 방향은 법칙을 뒤집으면 나옵니다. 일이 시간을 채우도록 두지 말고 일마다 시간을 먼저 정해서 배정하는 것입니다.

  1. 내부 마감을 따로 만듭니다. 진짜 마감이 2주 뒤라면 1주짜리 내 마감을 정해두는 식입니다. 일부러 빠듯하게 잡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빠듯한 마감은 참고 자료 하나 더 찾기 같은 부풀리기를 자연스럽게 잘라냅니다.
  2. 시작하기 전에 끝의 기준을 한 줄로 적습니다. "경쟁사 3곳의 가격 정책이 표로 정리되면 끝" 같은 문장입니다. 끝의 기준이 없는 일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연료 삼아 무한히 자랍니다.
  3. 회의는 기본 30분으로 잡습니다. 1시간은 회의의 적정 길이가 아니라 캘린더 앱의 기본값일 뿐입니다. 안건과 끝나는 조건을 초대장에 적어두면 30분도 깁니다.
  4. 하루의 끝에 오늘 끝낸 일을 한 줄씩 적어봅니다. 채운 시간과 남은 결과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록입니다. 적을 게 없는 날이 이어진다면 시간이 어디로 새는지가 거기서 드러납니다.

바쁨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파킨슨의 법칙에서 하나만 가져간다면 이것입니다. 오래 걸린 일이 곧 잘한 일은 아닙니다. 일은 시간을 주는 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바쁨은 일의 가치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시간이 일의 크기를 정하게 두지 말고 내가 일의 크기를 정하고 시간을 붙이는 것입니다. 마감을 정하는 사람이 일의 크기를 정합니다. 그 마감을 남이 정해주기 전에 스스로 정하는 것, 그게 이 오래된 법칙에 대한 가장 실용적인 응수입니다. 그리고 끝낸 일을 그때그때 적어두면 이 응수가 습관이 됩니다. 기록이 쌓이면 내 시간이 바쁨으로 흘렀는지 결과로 남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 기록은 그대로 커리어 기록이 되어 다음 이력서의 재료가 됩니다. GridResume의 커리어 기록을 그 용도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두었습니다.